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돌베게)를 읽고….
후불제 민주주의. 기막힌 이름이다. 예리한 통찰에서 비롯한 재미있는 시선이다. 1945년 독립이후 구성된 제헌의회는 1947년 헌법을 완성하고, 형식상의 민주주의 국가를 완성한다. 말 그대로 이름뿐인 민주 공화국의 역사에는 독재의 암운이 드리웠고 1987년에서야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헌법이 존재(sein)아닌 당위(sollen)로서 살아있었다. 당위를 존재하게하기 위해 수 많은 젊은이가, 지식인들이, 국민들이 피를 흘렸다. 그렇다면 2010년 현재 헌법은 존재로서 살아 숨 쉬는가? 저자는 우리가 여전히 후불을 치르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문명의 역주행’을 하고있는 현 정부도 우리가 치르는 대가에 포함돼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헌법에서 찾는다. 때문에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근거 또한 헌법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오류를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제 27조 ④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117p)’ 같은 주장은 근거를 헌법 제 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에서 찾고 있다. 이외에도 행복, 자유, 주권, 유신헌법, 재산권, 통일 등등 수많은 키워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헌법에서 근거를 내세운다. 헌법이 우리 사회 구성의 최고 가치이자 합의물이기에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다른 흥미로운 점은 헌법을 해석하는 그의 시각이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자유주의자’라고 칭하며, 사회자유주의자로서 바라보는/바라는 사회, 국가에 대한 관점을 늘어놓는다. 일변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참여 정부의 과업을 보면 ‘사회’라는 수식어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측면이 있다. 지난 정부가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85p)’같이 ‘자유’에 방점을 둔 그의 생각을 접할 때마다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진보진영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참여정부를 줄곧 공격했었다. 심지어 노회찬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 시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실개천이 있다면,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한강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점이 몹시 서운했던 모양이다. 이 내용을 언급하는 제2부에서 참여 정부에서 일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변명 아닌 변명과 당시의 소회를 늘어놓는다.
그는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라는 에필로그로 마침표를 찍는다. 책 전반에서 언급한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헌법을 당위 아닌 존재로 만들기 위해 ‘선의 연대’를 강조한다.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이다. 서거 정국 이후 ‘문명의 역주행’은 강화되고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동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선의 연대’를 강조하던 저자를 중심으로 지난 17일 국민참여당이 창당했다. 일단, 정치에서 선과 악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반대하지만, 국민참여당이 그가 말하는 연대의 구심력이 될지, 원심력이 될지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올 6월에 있을 지방선거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 인용구
69p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싸운다.
85p 경쟁은 그저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97p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
…그들은 좋은 복지 제도가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동전의 뒷면을 애써 외면한다. 경제적 번영 또는 국가 경쟁력과 복지, 이 둘 사이에 서로를 누적적으로 강화하는 ‘양의 되먹임’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 출력의 일부를 다시 입력 쪽으로 되돌려 보내서 개선하려고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입력신호에 출력신호가 첨가되는 것을 양되먹임, 약화되는 것을 음되먹임이라 한다.
♣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문제
1. 2010년 현재 ‘헌법’은 존재인가 당위인가?
2. 최근 법 해석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충돌이 잦다.(강기갑 의원 무죄, 집시법 위헌 판결 등) 원인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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